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일부러 '해체'된 상태로 전시하는 유물, 대체 왜?

2025-09-01 17:40
 19세기, 한 관료의 선정을 기리기 위해 1,500명이 넘는 백성이 한 땀 한 땀 이름을 수놓아 선물한 특별한 양산이 18년에 걸친 대장정 끝에 마침내 그 속살을 드러낸다. 국립민속박물관은 복합 재질 유물의 고난도 보존처리를 모두 마치고, 관서병마절도사 이종승(1828~?)에게 헌정된 '만인산(萬人傘)'을 국립민속박물관 파주 열린보존과학실에서 최초로 공개한다고 밝혔다.

 

'만인의 양산'이라는 이름처럼, 만인산은 단순한 햇빛 가리개가 아니다. 선정을 베푼 지방 수령이 임기를 마치고 떠날 때, 고을 백성들이 감사의 마음과 존경을 담아 제작해 선물한 일종의 '명예 기념품'이다. 국립민속박물관이 소장한 5점의 만인산은 모두 19세기 후반에 제작된 것으로, 당시의 사회상과 공예 기술을 엿볼 수 있는 귀중한 유물로 평가받는다.

 

하지만 만인산은 비단 같은 직물뿐만 아니라 나무, 금속 등 여러 재료가 결합된 복합 재질 유물이기에 보존 과정이 극히 까다롭다. 특히 세월의 무게를 이기지 못하고 삭아버린 직물의 손상이 심각해, 하나의 만인산을 복원하는 데 짧게는 1년, 길게는 수년의 시간이 소요된다. 국립민속박물관은 2006년부터 시작해 2024년에 이르기까지, 무려 18년에 걸쳐 소장 만인산 5점 전체의 보존처리를 완료하는 쾌거를 이루었다.

 


이번에 대중 앞에 처음으로 나서는 이종승 만인산은 그중에서도 특별한 의미를 지닌다. 덮개와 휘장(장식 천)에만 무려 1,526명의 이름이 오색실로 정교하게 수놓여 있어, 당시 이종승 절도사를 향한 백성들의 뜨거운 마음을 생생하게 증언한다. 이어서 공개될 희천군수 김영철의 만인산은 살대에 금박 문양을 찍는 등 전형적인 구성을 완벽하게 갖추고 있어 두 유물을 비교해보는 재미도 쏠쏠할 것이다.

 

무엇보다 이번 전시가 파격적인 이유는 만인산을 완성된 '조립' 형태가 아닌, 보존처리를 위해 '해체'한 상태 그대로 공개한다는 점이다. 박물관 관계자는 "덮개와 휘장, 꼭지, 자루, 살대 등 각 부속품을 분리하여 전시함으로써, 관람객이 각 구성품의 섬세한 조형적 특성과 제작 기술을 눈으로 직접 확인할 수 있도록 했다"고 설명했다. 이는 유물을 완성품으로만 감상하던 기존의 방식을 완전히 뒤엎는 새로운 시도다. 관람객들은 마치 장인의 작업실을 엿보듯, 만인산의 구조와 아름다움을 속속들이 파헤쳐 볼 수 있는 특별한 기회를 갖게 된다.

 

해체된 만인산의 비밀을 엿볼 수 있는 이번 전시는 내년 8월 23일까지 이어지며, 직물 유물의 안전한 보존을 위해 3개월 주기로 전시품이 교체될 예정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