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치프레스

3代 세습에도 살아남은 北 외교 거물…김영남 사망에 韓 정부가 보인 반응

2025-11-04 17:36
 정동영 통일부 장관이 4일 김영남 전 북한 최고인민회의 상임위원장의 사망에 대해 공식적인 애도의 뜻을 표명하면서, 얼어붙은 남북 관계에 미세한 파장이 일고 있다. 정 장관은 조의문을 통해 김 전 위원장이 2018년 평창 동계올림픽 당시 북측 고위급 대표단을 이끌고 방남해 대화의 물꼬를 튼 공을 높이 평가했다. 또한 2005년과 2018년 평양에서 두 차례 직접 만나 한반도 평화와 남북관계 발전을 위해 의미 있는 대화를 나눴던 개인적 인연을 회고하며 고인의 명복을 빌었다. 이번 조의문은 남북 간 직통 연락선이 모두 끊긴 상황을 고려해 언론을 통해 발표되는 이례적인 방식으로 전달되었다.

 

과거 남북은 고위 인사의 사망을 계기로 ‘조문 외교’를 펼치며 경색된 국면을 타개하려는 시도를 여러 차례 이어왔다. 2005년 연형묵 국방위 부위원장, 2006년 임동옥 통일전선부장, 2015년 김양건 통일전선부장 사망 당시 남측 통일부 장관은 각각 조전을 보내 애도를 표했다. 특히 2011년 김정일 국방위원장이 사망했을 때는 이희호 여사와 현정은 현대그룹 회장이 직접 방북해 조문했고, 이에 앞서 2009년 김대중 전 대통령 서거 시에는 북측이 김기남 당 비서와 김양건 통일전선부장을 서울에 조문단으로 파견하며 화답한 바 있다. 이번 조의문 발표 역시 이러한 과거 사례에 비추어 볼 때, 단절된 대화 채널을 복원하려는 최소한의 의지 표명으로 해석될 여지가 있다.

 


북한은 김 전 위원장의 장례를 국장으로 치르며 최고의 예우를 갖추고 있다. 김정은 국무위원장이 직접 국가장의위원회 위원장을 맡고 새벽 1시에 시신이 안치된 빈소를 찾는 등 각별한 모습을 보였다. 김 전 위원장은 1959년부터 외교 분야에 몸담아 김일성·김정일·김정은 3대에 걸쳐 숙청 없이 자리를 지킨 북한 외교의 ‘산증인’으로 불리는 인물이다. 이러한 상황에서 박지원 더불어민주당 의원은 자신이 직접 조문 특사로 방북해 남북관계 개선의 돌파구를 열겠다며 공개적으로 요청하고 나섰다. 박 의원은 정동영 장관과 국정원에도 뜻을 전달하겠다며, 남북 양측이 자신의 특사 파견을 수용해달라고 간곡히 호소했다.

 

하지만 이번 조의 표명이 실질적인 남북 대화 재개로 이어질지는 여전히 미지수다. 북한은 2023년 12월 남한을 ‘적대적 두 국가’로 규정한 이후 모든 대화와 협력의 통로를 차단하며 강경 노선을 유지하고 있기 때문이다. 김 전 위원장이 과거 남북 대화에 기여한 상징적 인물이라는 점, 그리고 우리 정부가 과거 전례를 고려해 조의를 표명했다는 점은 의미가 있지만, 북한이 이를 대화 재개의 신호로 받아들이고 호응해 올 것이라고 낙관하기는 어려운 상황이다. 결국 정 장관의 조의문과 박 의원의 특사 제안이라는 작은 불씨가 꺼져가는 남북 관계의 불을 다시 지필 수 있을지는 전적으로 북한의 태도에 달려있다.